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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컬렉션] 복식사 이야기 - 중세 복식 문화②

by ARO's 2024.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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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사 이야기 - 중세 복식 문화②

오늘은 어제의 이어서 비잔틴 복식에서 이어진 중세 전기의 복식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자.

 

먼저 중세의 개념부터 알아보자면, 중세는 서양에서 존재하는 개념이자 중부 유럽의 역사 개념이다. 중세 시기는 여러 의견이 있으나 대개 서 로마가 멸망한때부터 르네상스가 출발한 약 1000년간을 뜻한다. 역사의 주역이 로마에서 게르만으로 바뀌는 시기임과 동시에 역사의 장이 이탈리아 반도에서 알프스를 넘어 중부 유럽까지 옮겨가는 시기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세부터 유럽의 역사와 문화가 만들어지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중세 전기 복식 문화

복식 문화를 기준으로 가장 영향력 있던 사건인 십자군 전쟁을 기준으로 십자군 전쟁의 전반을 전기 그 이후를 후기라고 나누어 보겠다. 서 로마가 망한 후 제국의 영토는 게르만족에 의해 분할되며 혼란기를 겪게 된다. 많은 분할이 이루어졌으며 이런 조직을 위한 자립체제로써 등장한 것이 바로 로마교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유럽의 중북부 지역의 게르만족의 하나였던 프랑크 왕궁이 기독교를 바탕으로 성장하였고 교황을 도와준 프랑크 왕국의 왕을 교황이 로마제국의 황제로 인정한다(800년). 로마가 망한 지 324년 만에 게르만의 새로운 로마가 카톨릭 국가로써 중부유럽에 부활하였으며, 이것은 동 로마의 영향에서 벗어난 카톨릭의 역사와 함께 유럽을 중심으로 역사가 새로이 쓰여지게 된다. 프랑크 왕국을 이어받은 프랑스가 유럽 문화의 중심이 되는 것이기도 하다.

 

로마가 망한 후 수세기에 걸친 혼란 속에 화폐의 통용과 물품의 이동이 보장되지 못하여 상업이 발전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자급자족의 장원 제도가 성립한 것도 농업 외에는 생계 수단이 없었던 사회상을 나태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1세기부터 철제 쟁기의 사용과 개간 등으로 농업이 발전하며 생산품이 다양해졌고 그것은 곧 교환이 필요한 상업의 발전으로 이루어져 갔다. 이들이 장사의 거점이 되는 곳에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고, 도시의 영주들은 도시에서 각종 세금을 징수하는 과정 속에서 현재 유럽의 도시들 대부분이 탄생하게 된다. 특별자치영역인 도시는 이후 자유를 상징하게 되며 유럽의사회에서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도시민이라는 계급이 귀족과 농민들 사이에 자리 잡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것은 유럽의 시민 의식과 근대정신의 뿌리가 되면서 유럽사회를 바꾸어 놓는다. 

 

십자군 전쟁

십자군 전쟁은 1091년에 시작된다. 이때는 로마교황의 권한이 가장 컸고, 동 로마 제국은 이슬람 세력에 시달리다가 로마교황에게 지원을 요청한다. 이에 교황 우르바노 2세의 호소로 20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 시작된다. 이 전쟁은 중세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이를 통해 유럽 사회의 대변혁이 일어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동방과의 문물교환이다. 이를 주도한 것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등이었고 동방과의 지중해 무역은 유럽 내륙 도시들로 연결되어 도시는 더욱 번창해졌다. 이탈리아에서는 도시국가로 발전되고 이들이 쌓은 부와 비잔틴에서 전해진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가 바탕이 되어 후에 르네상스 시대를 열게 된다.

 

중세 전기의 문화 특성

로마 카톨릭과 게르만 세력의 융합 시기였고 유럽에 새로운 서양문화의 형성을 준비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중세 전기 후반에는 십자군 전쟁과 도시를 통한 문물 교환이 이루어지면서 동시에 비잔틴의 영향을 받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예술 분야에서는 10세기 사회가 안정되며 로마네스크 양식이 자리를 잡게 된다. 로마네스크 양식은 건축양식에서 비롯된 말로 중세 수도원 중심으로 석재나 벽돌로 견고한 교회를 짓기 시작한 양식이다. 이것의 가장 큰 특징은 반원형 석조 궁륭의 지붕과 아치이며 전체적으로 장중한 맛을 풍긴다. 반원형 궁륭이란 원통을 세로로 잘랐을 때 생긴 반쪽 모양 형태를 말한다. 

 

중세 전기의 복식의 특질

중세 초기 게르만 문화와 로마 문화가 접목되는 시기이다. 도시의 발전은 다양한 직업을 만들었으며 복식도 상업 활동을 위한 이동과 활동이 편하고 몸에 맞는 생활 복식이 주가 되는 복식으로 발전했다. 여기에 비잔틴으로부터 새로운 직물과 기술이 전해져 복식도 복잡하고 색채도 풍부해졌다. 또한 십자군 전쟁 등 군복과 관련한 복식을 통해 몸에 맞추는 입체 재단과 단추의 도입이 시작되며 영주들의 구분을 위한 문양이 발달하기 시작한 것도 중세 전기 복식의 특징이다.

 

의복 종류에는 일반 서민 계층에서 착용한 기본적 복식인 튜닉(tunic)이 있었으며 남녀의 기장차이가 있었다. 또한 맨틀(mantle)이라는 고대부터 입어온 팔루다멘툼 형태와 비슷한 한 장의 직물로 둘러 입는 형태의 옷도 많이 입게 된다. 달마티카과 튜닉이 변형된 의복인 블리오(bilaud)는 11세기 귀족남녀가 겉옷으로 착용하였다. 여자들이 블리오 위에 착용한 조끼 형 의복인 꼬르사쥬(corsage)가 여기서부터 입기 시작한다. 

 

십자군 전쟁으로 인한 군복의 발달 또한 옷에서 볼 수 잇는데 브레(braies)라는 서민계층이 즐겨 입던 바지로 튜닉 밑에 착용하였으며 브레 위에 양말을 신은 후 발목부터 종아리까지 끈으로 감아서 착용했다. 또 쉬르코(surcot)이라는 전쟁 시 갑옷을 보호하기 위한 갑옷 가리개 의복도 있었는데 점차 일반 남녀들에게 유행이 되기도 했다.

 

중세 전기의 장식류

여자는 양갈래로 땋거나 뒤로 감아 정리 한뒤 흰색 린넨으로 목과 머리를 감싸는 윔플(wimple)과 목, 턱을 감싸고 베일을 쓰거나 관을 쓰기도 했다. 남자는 짧은 단발 형이나 어깨까지 기른 형태였다. 대표적 장신구는 보석으로 장식된 허리벨트였고 허리띠에 앨모너라고 부르는 주머니 장식이 유행이기도 했었다. 십자군 전쟁에 나가는 병사들이 십자가를 넣은 주머니를 차던 풍습이 일반인들에게 퍼져서 장식화 된 것이었으며 현재 핸드백의 유래가 된다.

 

현대 패션에서는 십자군 전쟁을 연상시키는 쉬르코와 금속성 소재나 장식 등이 모티브를 얻어 디자인으로 많은 활용이 되기도 한다.

 

다음 글에서는 중세 후기의 복식 문화에 대해서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