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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블로그] 복식사 이야기 - 근대 복식 문화③

by ARO's 2024.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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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사 이야기 - 근대 복식 문화③

오늘은 근대의 복식 문화중에 크리놀린 스타일에 관하여 얘기해 보자. 크리놀린 스타일은 나폴레옹 3세 때 나타났으며, 이 시기 산업혁명을 통한 대량생산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한 복식사에서 큰 발전이 있던 시기였다.

 

나폴레옹 3세 시기는 산업혁명에 의한 자본주의 최전성기로서 복식발전이 가장 두드러진 시기였다. 복식사상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온 것은 재봉틀의 발명이었는데, 1851년 미국의 싱거(Issac Merrit Singer)에 의해 개량된 재봉틀은 의복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기성복을 등장시켰다. 또한 1856년 영국에서 합성염료가 발명되면서 직물 염색에서도 혁신적인 발전을 하였다. 미국의 버터릭(Ebenezer Butterick)이 창안한 종이 패턴은 의복 제작기술을 발전시킴으로써 다채로운 복식의 대중화를 추진하였다. 복식사의 이런 기술 발전들은 다음세기 대중패션으로의 장을 열기 시작하였다.

 

크리놀린 스타일 복식의 특질

나폴레옹 3세는 루이 16세 때의 호화스러운 궁중생활을 동경하였고, 동시에 급성장한 부르주아 역시 옛 귀족 못지않은 권력과 재력을 과시하고자 하였다. 상류층은 화려한 무도회를 여는 등 옛 로코코 시대의 생활을 모방하면서 크리놀린이라는 스커트 버팀대로 부풀린 크리놀린 스타일의 복식을 만들었다. 이 스타일은 신로코코 스타일이라고도 하며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이고 스커트 폭과 소매를 과장한 실루엣이다. 스커트에는 플란넬 페티코트와 크리놀린 혹은 페티코트를 겹쳐서 착용했으며 리본과 레이스뿐 아니라 다양한 문양도 많이 사용했던 엄청나게 화려한 스타일이었다. 복식 사상 가장 거대한 스커트의 실루엣을 나타냈다. 남자 복식은 당시 영국 스타일이 유행하였는데 보다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근대 남자 복식의 현태를 갖추게 되며 현대 남자 복식으로 연결된다.

 

크리놀린은 린넨에 말총을 넣어 교직 한 두껍고 빳빳한 직물을 일컬었는데 나중에는 이 크리놀린으로 만든 언더스커트와 스커트를 부풀리기 위한 철사로 만든 새장모양의 스커트 버팀대까지 쓰였고 모두를 크리놀린이라고 불렀다. 크리놀린 스타일은 나폴레옹 3세의 유제니(Eugenie) 황후의 임신한 몸매를 가리기 위해 디자인된 스타일이었다. 크리놀린으로 스커트가 넓어지자 어깨에 두르는 타원형 혹은 사각형의 커다란 숄이 유행하기도 하였다. 다양한 길이에 칼라가 달린 망토나 아라비아 스타일의 후드가 같이 인기를 끌기도 하였다. 남자 복식에서는 귀족적인 스타일을 선호하여 프록과 퀼로트를 착용하였으나 후기에는 산업화와 영국의 영향으로 실용적인 근대 남자 복식의 형태를 갖추었다. 남자 복식에서는 색코트, 디토 수트, 라글란 코트 등의 외투와 조끼, 셔츠, 바지 등의 현대와 유사한 복식의 형태를 이루었다. 셔츠는 단순한 형태였으나 크라바트 대신 칼라의 양끝이 접히는 넥타이를 착용함으로써 르네상스 시기부터 나타난 남자용 목장식이 현대의 넥타이로 발전하였다. 정장용 또는 이브닝용에는 주름이나 턱이 장식된 셔츠에 흰 넥타이나 나비넥타이를 착용하기도 하였다.

 

크리놀린 스타일의 장식류

여자들은 가운데 가르마에 돌돌 말린 컬을 양쪽으로 자연스럽게 늘어뜨리는 형태를 하였으며, 모자로는 앞 챙이 넓고 머리를 감싸는 형태의 모자가 유행하였다. 남자들은 짧은 곱슬머리에 콧수염과 구렛나루를 길렀으며 중절모나 실크 햇, 볼러, 밀짚모자 등을 선호하였다.

 

현대 패션에서의 크리놀린 스타일은 형태적 불편함 때문에 특별한 용도의 드레스로 재현되기도 하였다. 또한 특징적인 플라운스 같은 장식을 여러 겹 겹친 스커트는 영향을 많이 받아 현대에서도 많이 활용된다.

 

다음 글에서는 버슬 스타일, 아르누보 스타일의 복식에 대해서 알아보자. 그 뒤로는 20세기로 넘어간 복식의 형태에 대해서 알아가보고자 한다.